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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즈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 서사, 칸 영화제 수상 이유, 가족의 정의

by 모후의 기록 2025. 5. 28.

어느가족 포스터

일본 영화계에서 히로카즈 고레에다는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주제를 탐구해온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눈에 띄는 기법이나 자극적인 서사 없이도 삶의 본질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연출을 해왔습니다. 그의 영화 속에는 대단한 사건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지만, 대신 인물 간의 작은 표정 변화와 침묵 속에 숨겨진 감정이 오롯이 스크린을 채웁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내는 감독이며, ‘보여주는 것’보다 ‘느끼게 하는 것’에 집중해온 연출자입니다. 히로카즈 고레에다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관계를 그려내며 일관된 주제를 유지해왔고, 그 정점이 바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히로카즈 고레에다 감독이 가족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중심으로, 그가 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이유, 그리고 대표작 ‘어느 가족’이 그의 영화 세계에서 가지는 의미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 서사

히로카즈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양한 영화 속에서 반복해 왔습니다. 그가 그리는 가족은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구조를 넘어, 함께 살아가고, 돌보고,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연대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뒤바뀐 아이를 통해 혈연과 양육의 의미를 되묻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새롭게 모인 이복 자매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가족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접근은 전통적 가치관에 익숙한 일본 사회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고레에다는 가족의 본질을 조명합니다. 그의 영화에는 커다란 사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물 간의 시선, 식사 장면, 사소한 대화와 행동을 통해 관계의 깊이와 변화를 서서히 드러냅니다. 이러한 방식은 감정의 폭발보다 그 이전의 축적된 감정의 흔적에 집중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인물의 입장이 되어 상황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또한 그는 어린이의 시선을 자주 활용합니다. 이는 판단보다는 관찰에 집중하는 연출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관객은 등장인물에 대해 단정짓기보다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히로카즈 고레에다의 가족 영화는 그래서 울림이 크지만, 감정의 강요는 없습니다. 대신 여운을 남기며 질문을 던지고, 관객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만듭니다. 그는 가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천천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칸 영화제 수상 이유

2018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어느 가족’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이 처음으로 큰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이 사례는 그의 꾸준한 연출 세계가 결국 세계 영화계에 통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가족’이 칸에서 인정받은 데에는 몇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영화의 주제 자체가 매우 보편적이면서도 날카롭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가족처럼 살아가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혈연 중심 가족 제도에 대한 질문과 사회복지 시스템의 공백, 가난과 소외가 만들어낸 관계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특정 국가의 현실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 사회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가집니다. 또한 고레에다 감독은 이 주제를 전혀 무겁지 않게 풀어냅니다.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다큐멘터리적인 카메라 워크는 관객이 그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게 하며, 평가가 아닌 관찰의 태도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듭니다. 그는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며, 인물의 행동에 선과 악을 단정 짓지도 않습니다. 이 같은 방식은 유럽 예술영화 전통과도 잘 어울리며, 칸 영화제가 추구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고레에다의 영화가 완성도 높게 구현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연출력은 ‘어느 가족’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정적인 화면 안에서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는 연출, 긴 침묵 속에 숨어 있는 진심,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관객뿐 아니라 심사위원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칸의 선택은 단순한 상의 수여를 넘어서, 히로카즈 고레에다라는 감독의 오랜 철학과 진심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대표작 ‘어느 가족’이 전하는 가족의 정의

‘어느 가족’은 제목처럼 이 가족이 진짜 가족인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영화는 법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도둑질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등장인물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처럼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실제 가족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유대감과 정서는 오히려 진짜 가족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영화는 혈연이 없는 이들의 공동체를 통해 가족이라는 개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가족이란 법적으로 정의된 관계인가, 아니면 서로를 돌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인가. 영화 속 아이들이 부모에게 “왜 키워준 건데?”라고 묻는 장면은 이런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만듭니다. ‘어느 가족’은 가족이란 타이틀보다, 그 안에 담긴 행위와 정서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한 영화는 일본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와 노동 문제, 여성의 빈곤, 아동 학대 같은 현실적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하지만 고레에다는 이러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인물들의 삶을 담담히 따라가며 관객이 그 현실을 체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이 영화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도 충분히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진짜 가족’이라는 기준 자체가 얼마나 모호하고 위태로운 것인지를 드러내며, 관객의 마음에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남깁니다.

결론

히로카즈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게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그는 자극적인 이야기나 강한 전개 없이도 섬세한 감정과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관객과 깊은 감정의 교류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어느 가족’은 그의 연출 철학이 집약된 작품으로, 가족을 혈연이 아닌 관계의 본질로 정의하며 사회적 제도와 관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한 나라의 감독이 아니라, 전 세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창작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칸 영화제의 수상은 그에 대한 정당한 응답이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말보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장면보다 인물의 눈빛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앞으로도 그는 계속해서 삶의 본질과 인간 관계의 의미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야기해줄 것입니다. 그의 영화는 소리 없이 깊이 스며드는 울림으로, 우리가 진짜 중요한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