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은 덴마크 신누아르 계보를 잇는 연출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공허를 탐구합니다. 특히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중년 남성들의 일탈을 통해 삶의 허무와 위로를 동시에 그려냅니다. 이 작품에서 빈터베르는 알코올이라는 매개로 캐릭터의 실존적 위기를 시각화합니다. 인물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잃어가는 삶의 의미를 잠시 되찾지만, 곧 다시 공허로 돌아옵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절제된 파괴’라는 아이러니를 구축합니다. 본 글에서는 먼저 빈터베르 감독이 어떻게 공허감을 서사로 풀어냈는지 살펴보고, 이어 영화에 흐르는 현실적 유머 감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석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나더 라운드’가 대표작으로 자리잡은 이유와 메시지를 정리하겠습니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실존적 공허감
빈터베르 감독의 작품은 종종 인물의 내면을 관조하듯 접근합니다. ‘어나더 라운드’에서는 주인공 마틴과 친구들이 젊음을 되찾기 위해 하루 평균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유지하는 실험을 시작합니다. 이 설정은 비현실처럼 보이지만, 감독은 이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연출합니다. 카메라는 이들의 거친 표정과 흔들리는 시선을 길게 따라갑니다. 술이 주는 일시적 자유감은 짧은 해방을 의미하지만, 곧 무기력으로 되돌아옵니다. 빈터베르는 여기서 ‘공허의 이중성’을 강조합니다. 인물들은 술잔 앞에서 진정한 소통을 경험하는 듯 보이나, 결국 서로에게 진짜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납니다. 감독은 이러한 순간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한 톤으로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인물들의 깊은 고독을 체험합니다. 공허는 장면 전환이나 내레이션이 아닌, 인물의 일상과 대화 속에 스며듭니다. 밤중의 텅 빈 바, 비 오는 거리, 집으로 돌아간 뒤 홀로 남은 뒷모습은 공허감을 시각적 은유로 전환합니다. 빈터베르는 재난이나 극단적 사건이 아닌, 우리 모두가 매일 마주하는 작은 허무에서 실존적 질문을 끌어냅니다.
현실적 유머 감각
‘어나더 라운드’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놓지 않습니다. 빈터베르는 일상의 아이러니를 포착해 개그로 전환합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교실 앞에서 춤추는 장면은 우스꽝스럽지만, 교사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인물의 내면을 폭로합니다. 이 유머는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씁쓸함을 남깁니다. 감독은 타이밍을 중시해 짧은 침묵 뒤에 의미 있는 대사를 배치합니다. 친구들이 모닥불 앞에서 엉뚱한 농담을 던지는 장면은, 그 순간의 결속감과 그 이면의 고립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빈터베르는 과도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유머를 통해 인물 간의 불편한 진실을 건드립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가벼운 웃음 뒤에 숨은 심리적 긴장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영화는 중년 남성들의 위선을 꼬집습니다. 권위적인 태도로 시작한 술 실험은 곧 코믹한 실패담으로 변질되지만, 그 실패담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녹아 있습니다. 빈터베르의 유머는 장르적 완급 조절을 돕는 장치이자, 공허와 희망의 경계를 시각화하는 방법입니다.
대표작 ‘어나더 라운드’
‘어나더 라운드’는 2020년 개봉 직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실험적인 서사 구조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결합된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마틴, 니콜라이, 피터, 톰 등 네 명의 교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그들의 관계와 실험이 교차 편집으로 전개됩니다.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술 실험은 성공처럼 보이며, 이들은 무대 위에서 열정적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이 장면은 인생의 정점을 묘사하지만, 이내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대비로 이어집니다. 감독은 이 방점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틴이 딸 앞에서 춤추다 멈춰 서서 빛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은, 삶의 의미를 질문하게 만드는 강렬한 은유입니다. ‘어나더 라운드’는 빈터베르 감독의 정체성과 예술적 지향을 가장 뚜렷이 드러낸 작품입니다. 그는 실존적 공허와 유머를 결합해, 관객이 자신을 돌아보도록 유도합니다. 이 영화는 위로와 갈등,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서사를 완성합니다.
결론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은 ‘어나더 라운드’를 통해 인간 존재의 허무와 소통의 가능성을 동시에 제시했습니다. 그는 주인공의 시선을 관객에게 전이시키는 시점 전환과, 절제된 감정 연출로 실존적 공허감을 체험하도록 만듭니다. 동시에 현실적 유머 감각을 활용해 무거운 주제 사이사이에 웃음을 끼워 넣으며, 문턱 높은 주제를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합니다. ‘어나더 라운드’는 인물 간의 관계와 개인의 위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알코올이라는 매개를 통해 허무와 희망을 교차시키며 완성됩니다. 이 작품은 중년의 위기를 넘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